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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한국은 유엔 193개 회원국 중 마지막 미수교국이던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로써 북한을 제외한 모든 유엔 회원국과 수교를 맺으며 우리 외교 지형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특히 이번 수교는 북한 정권과 닮은 꼴이던 바샤르 알아사드 세속 독재가 반군의 기습 공세에 극적으로 무너지며 가능해진 일이라 더 남다르다. 한국과 시리아는 앞으로 깊은 협력을 약속했다.

시리아가 중동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큰 시장이 열린 거냐며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다. 그렇진 않다. 시리아의 최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600달러로 6000달러 수준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보다도 낮다. 1970년 하페즈 알아사드가 아랍 사회주의 1인 독재를 시작해 부패 무능 통치가 본격화됐고 2000년부터는 아들 바샤르가 이를 세습했다. 긴 독재 기간 시리아는 늘 가난했고 2011년 내전과 뒤이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발호로 더욱 황폐해졌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공존하던 문화의 보고이자 섬세한 전통을 간직해온 나라가 지도자를 잘못 만난 비극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지중해에 접하고 튀르키예, 이스라엘, 레바논, 이라크, 요르단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는 중동에서 가장 전략적 가치가 높은 요충지다. 지난 3월 출범한 시리아 과도정부는 지금 그 전략적 입지를 둘러싼 외부 세력의 치열한 각축전 한가운데에 서 있다. 우선 알아사드 정권을 감싸온 러시아와 이란은 과거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 과도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며 민병대와 종교단체 채널을 유지하려 한다. 러시아는 타르투스 해군기지 임대권은 지키고 있으나 라타키아 공군기지에선 장비와 병력을 철수했다. 이란도 혁명수비대 인력을 상당수 뺀 상태다.

튀르키예는 아흐마드 알샤라 과도정부 대통령을 반군 시절부터 후원해 왔고 막강한 대통령 권한과 중앙집권체제를 지지한다. 자국과 맞닿은 국경지대에서 자치 구역을 꾸리며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계 시리아 민병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또 자국 내 시리아 난민 310만여 명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 쿠르드계·드루즈계와 공통의 적을 공유하고 있어 이들 소수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제를 지지한다. 무엇보다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이란과 ‘저항의 축’ 프록시 연대를 약화시킬 기회로 보고 이들의 인프라를 파괴해 이란-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군사 네트워크를 차단하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UAE·카타르는 과도정부에 막대한 경제 지원을 통해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하고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이 아닌 아랍권의 입장을 투사하려 한다. 특히 사우디와 카타르는 지난 4월 시리아가 세계은행에 체납한 부채 1500만달러를 상환했고 공무원 급여 지급을 위한 재정 지원도 약속했다. 한편 미국과 유럽연합은 ISIS의 재부상과 무슬림 난민 유입을 우려해 지난 5월 시리아의 재건과 안정을 명분으로 제재 일부를 해제했다.

역내외 세력이 앞다퉈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리아에서 과도정부는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무장 세력을 포용하며, 구정권의 유산을 청산해 ‘과도기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뿐 아니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제를 복구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리아 국민 다수는 알샤라 대통령을 지지하고 자유와 안보 개선을 체감하지만 경제에 대해선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국은 시리아에 책임 있는 재건 참여를 약속했고, 과도정부는 우리의 개발 경험을 배우기 위해 대표단을 곧 보내겠다고 했다. 시리아가 혼란의 이행기를 무사히 통과하길, 우리와의 협력이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 본 글은 6월 10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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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